얼마 전 아내가 새가족반 수료자들에게 선물할 화분을 고르러 꽃시장에 다녀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작은 화분 하나를 더 사 왔는데, 둥글고 도톰한 잎에 짙은 윤기가 흐르는 ‘청페페’였습니다. 거실 한편에 작은 생명 하나가 더해졌을 뿐인데 집안 분위기가 사뭇 따뜻해졌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무심코 곁에 두려 했지만, 어느덧 아침에 눈을 뜨면 햇볕이 잘 드는 창가로 가서 청페페를 살피는 것이 저희 부부의 첫 일과가 되었습니다. 정성껏 물을 주고 돌보았더니 하루가 다르게 새잎을 틔워냈습니다. 화초를 기르는 보람이 쏠쏠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줄기 끝에 가늘고 길쭉한 연두색 꽃대까지 올라왔습니다.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는 화초도 사랑과 관심을 쏟아주면 싱그러운 생명으로 화답하는 것을 보며, 생명을 돌보는 기쁨을 새삼 배우고 있습니다.
문득 한 영혼의 무게를 묵상했습니다. 햇볕을 쬐게 하고 물을 주며 정성껏 보살피지 않으면 화초는 금세 시들어버립니다. 바울 사도는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고전 3:6)라고 고백합니다. 생명을 자라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은 심고 물을 주는 우리의 작은 수고를 기꺼이 사용하십니다. 그렇다면 한 영혼은 얼마나 귀할까요? 예수님은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마 16:2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얻는 것보다 한 사람의 생명과 구원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한 영혼이 귀한 것은 우리가 정성을 쏟기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그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보배로운 피를 흘려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의 값을 아는 사람은 한 영혼을 쉽게 지나치지 못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지금도 잃어버린 한 영혼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 마음을 품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오셨고(눅 19:10), 십자가에서 자기 생명까지 내어주셨습니다. 그러니 영혼을 향한 우리의 관심은 단순한 친절이 아니라, 잃어버린 자를 찾으시는 주님의 마음에 동참하는 거룩한 섬김입니다. 영혼은 저절로 품어지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이름을 불러 기도하고, 찾아가 사랑하며,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초청받아 예배당에 첫발을 디딘 분들에게는 형식적인 인사보다 눈을 맞추는 따뜻한 미소와 환대가 강력한 복음의 통로가 됩니다. 여린 새싹을 돌보듯 새가족의 곁을 사랑으로 지켜 줄 때, 하나님이 그들을 예수님께 깊이 뿌리내리게 하시고, 우리 기쁨의 공동체 안에서도 참된 가족으로 자라가게 하실 것입니다.
이번 주는 새생명축제를 앞둔 마지막 한 주간입니다. 이번 한 주간은 태신자를 가슴에 품고 기도하는 ‘특별새벽기도회’로 모입니다. 우리가 간절히 기도할 때 성령 하나님께서 태신자들의 마음을 열어 복음을 듣게 하시고, 예수님을 만나는 은혜를 베풀어 주실 줄 믿습니다. 새벽에는 그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고, 낮에는 삶의 자리로 찾아가 사랑으로 섬기며, 다음 주일 새생명축제에 기쁨으로 초청합시다. 한 영혼을 예수님께 인도하는 일보다 더 귀한 일은 없습니다. 청페페에 새잎이 돋고 꽃대가 올라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기쁜데, 한 영혼이 예수님을 만나 새 생명을 얻는 기쁨은 얼마나 크겠습니까? 이번 새생명축제를 통해 우리 모두가 그 기쁨을 누리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한 영혼을 품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그 영혼 안에 새로운 생명의 역사를 이루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