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사는 콘도 정원에는 우산처럼 잎이 넓게 펼쳐지는 ‘셰플레라(Schefflera)’, 일명 ‘우산 나무(Umbrella Tree)’ 두 그루가 서 있습니다. 우리 교회 작은 주차장 한편에도 같은 나무가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한동안 가지를 쳐주지 않았더니 잎이 무성해져 밤길을 밝히는 가로등 불빛마저 가려버렸습니다. 지난주, 어두워진 길을 다시 밝히기 위해 무성하게 자란 나뭇가지들을 잘라냈습니다. 워낙 잎이 무성하고 줄기가 단단해 가지를 치는 일도 쉽지 않았지만, 잘라낸 나뭇가지들을 치우는 일은 더 큰 수고를 요구했습니다. 대형 쓰레기통이 가득 차 청소차가 수거해 갈 때까지 주민들에게 쓰레기 배출을 자제해 달라고 양해를 구할 정도였습니다. 땀방울을 훔치며 나뭇가지를 치우는 동안, 우리 곁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나무들의 존재가 새삼 마음 깊이 다가왔습니다.
문득 오래전 방영되었던 드라마 《가을동화》의 한 장면이 생각났습니다. 행복한 가정에서 자라던 주인공이 어느 날 자신이 태어났을 때 병원에서 다른 아이와 뒤바뀌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사실을 알게 됩니다. 정든 가족과 헤어져야 했던 주인공은, “나는 다시 태어나면 나무가 될 거야. 한 번 뿌리내리면 다시는 움직이지 않는 나무가 될 거야.” 라는 가슴 아픈 고백을 남깁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사람들은 눈앞의 이해관계에 따라 쉽게 자리를 떠납니다. 그러나 나무는 참으로 성실합니다. 무더운 태양과 거친 비바람 속에서도 묵묵히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자리를 지킵니다. 말없이 자리를 지키는 나무의 우직함은, 쉽게 흔들리는 우리의 믿음을 돌아보게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모습은 상황에 따라 흔들리는 갈대가 아니라, 은혜 안에 깊이 뿌리내린 나무와 같은 신실함일 것입니다.
그러나 나무의 아름다움은 단지 한자리를 지키는 데 있지 않습니다. 나무는 그 자리를 지키면서도 자신이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내어줍니다. 셸 실버스타인의 명작 동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한 소년을 끝까지 사랑한 나무의 이야기입니다. 소년이 어릴 적에는 시원한 그늘과 달콤한 열매를 주었고, 청년이 되자 집을 지을 수 있도록 가지를 내어주었으며, 장년이 되어 먼 곳으로 떠나려 하자 배를 만들 수 있도록 자신의 줄기마저 내어주었습니다. 소년은 필요할 때마다 찾아와 원하는 것을 얻고 떠났지만, 나무는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신이 가진 것을 내어주었습니다. 긴 세월이 흘러 백발의 노인이 되어 돌아온 소년에게는 마지막으로 남은 그루터기마저 편안한 쉼터로 내어줍니다. 오직 사랑하기에 자신이 가진 것을 남김없이 내어주는 나무의 희생 앞에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이처럼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나무의 모습은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을 떠올리게 합니다.
예수님의 생애에도 ‘나무’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목수였던 요셉의 가정에서 자라셨고, 친히 목수로 일하시며 나무를 다루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 나무에 자신의 몸을 내어주셨습니다. 동화 속 나무는 소년에게 자신이 가진 것을 내어주었지만, 예수님은 죄인인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으시고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신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오늘도 묵묵히 서 있는 나무를 바라보며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우리도 주님이 심어주신 믿음의 자리를 꿋꿋이 지키며, 시간과 물질과 사랑을 이웃에게 기꺼이 나누기를 바랍니다. 지친 사람에게 그늘이 되어주고, 길 잃은 영혼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며, 누군가를 위해 아낌없이 주는 나무로 살아가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