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좋다(All’s well that ends well).”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제목입니다. 끝이 좋으면 지나온 과정의 실수와 아픔도 새로운 의미를 얻습니다. 그러나 끝이 좋지 않으면 아무리 화려하게 시작했어도 큰 아쉬움이 남습니다. 우리는 좋은 학교에 입학하고, 좋은 직장을 얻고, 사업과 신앙생활도 순조롭게 출발하기를 원합니다. 물론 좋은 출발은 귀한 복입니다. 그러나 인생에서 시작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끝맺는가’입니다. 마라톤은 힘차게 출발하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끝까지 달려 결승선을 통과해야 비로소 완주가 됩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젊은 날에 얼마나 화려했는가보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 앞에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출발뿐 아니라 마지막까지 걸어가는 믿음의 길을 귀하게 보십니다.
역대상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울의 시작은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장 작은 베냐민 지파 출신임을 기억하며 스스로를 낮출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임했고, 그 은혜에 힘입어 위기에 처한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을 구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사울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 생각을 앞세웠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보다 자신의 왕권을 지키는 데 집착했습니다. 다윗을 시기하며 인생의 귀한 시간을 허비했고, 마침내 절박한 위기가 닥쳤을 때조차 하나님을 찾지 않고 신접한 여인을 찾아갔습니다. 역대기 기자는 사울의 비극적인 몰락을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대상 10:14)라고 요약합니다. 사울을 무너뜨린 것은 블레셋의 예리한 화살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 묻기를 멈추고 자기 생각대로 걸어간 불순종이었습니다.
우리의 신앙 여정도 시작만큼이나 마지막이 중요합니다. 전도서 기자는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다”(전도서 7:8)라고 말씀합니다. 처음 주님을 만났을 때의 감격도 귀하지만, 세월의 풍파를 지나면서도 변함없이 주님을 사랑하는 신앙은 더욱 귀합니다. 처음 직분을 받았을 때의 떨림도 아름답지만, 오랜 세월 충성한 뒤에도 낮은 자리에서 묵묵히 섬기는 겸손은 더욱 아름답습니다. 세월이 흐른다고 저절로 믿음이 깊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때로는 걸음을 멈추고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는 처음보다 지금 주님을 더 사랑하고 의지하는가? 내 경험과 판단을 앞세우기보다 먼저 무릎 꿇고 하나님의 뜻을 묻고 있는가?’ 신앙은 한때 뜨거웠던 과거의 ‘추억’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붙들고 말씀에 순종하는 ‘현재진행형’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시작이 좋지 못하거나 오점을 남기면 인생을 다 망친 것으로 생각하며 절망합니다. 그러나 초라한 출발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는 아름다운 인생의 첫 페이지가 될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은혜 안에서는 부끄러운 시작도 아름다운 결말의 재료가 됩니다. 우리는 연약해서 때로 실수하고 넘어집니다. 중요한 것은 실패했을 때 죄책감에 짓눌려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은혜를 붙들고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실패보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훨씬 큽니다. 잘 시작한 것에 만족하지 말고, 지금도 믿음의 길을 잘 걷고 있는지를 돌아보십시오. 끝까지 예수님을 바라보고 말씀에 순종하여, 인생의 마지막 날에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딤후 4:7)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시작보다 마지막이 더욱 아름다운 인생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