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무신론자이자 진화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그의 책 [눈먼 시계공]에서 생명과 죽음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우리 몸은 대개 주변 환경보다는 따뜻하다. 추운 기후에서는 그 차이를 유지하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한다. 우리가 죽으면 그 일은 중단되고 온도의 차이는 사라지기 시작한다.” 죽는다는 것은 결국 ‘주변 온도와 같아지는 것’입니다. 영적인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영적 온도가 세상 온도와 똑같아져 아무런 영적 저항도, 뜨거움도 없다면 육체는 살아있으나 영혼은 죽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뜨거운 피가 돌지 않는 시신이 차갑게 식어가듯, 열정을 잃어버린 신앙은 살아 있으나 생명력을 잃어가는 신앙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끊임없이 거룩한 온도를 유지하려는 ‘열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열정은 곧 살아있음의 증거입니다. 
 
  재능이 엔진이라면 열정은 그것을 움직이는 연료입니다. 사상가 랄프 왈도 에머슨은 “이 세상에 열정 없이 성취된 위대한 일은 하나도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열정을 품은 사람들을 통해 발전해 왔습니다. 그러나 모든 열정이 아름다운 것은 아닙니다. 욕망에도 열정이 있고 성공에도 열정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뜨거우냐가 아니라 무엇을 향해 뜨거우냐입니다. 바울은 로마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 12:11)라고 권면했습니다. 성도의 열정은 자신을 드러내는 열정이 아니라 주님을 섬기는 거룩한 열정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일에 뜨거워야 하고, 예배하고 기도하는 일에 뜨거워야 하며, 복음을 전하고 영혼을 섬기는 일에 뜨거워야 합니다. 세상을 향한 욕망은 식어가고, 주님을 향한 거룩한 열정은 날마다 더욱 뜨거워지기를 바랍니다. 우리 가슴 속에 주님을 향한 거룩한 불길이 활활 타오르기를 소망합니다.

  성경의 역사는 언제나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열정을 품은 사람들을 통해 일어났습니다. 다윗은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시 69:9)라고 고백할 만큼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을 품었습니다. 골리앗이 40일 동안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할 때, 모든 군사가 침묵했으나 다윗만은 가슴에 거룩한 불이 붙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으로 나아간 그는 결국 골리앗을 꺾고 승리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마음에 불이 붙은 사람을 통해 당신의 나라를 확장하십니다. 반면 요한계시록의 라오디게아 교회는 미지근한 영적 무기력증에 빠져 주님의 책망을 받았습니다. 이때 주님은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 3:19)라고 명하셨습니다. 식어버린 열정을 회복하는 길은 단순히 감정을 뜨겁게 만드는 데 있지 않습니다. 주님 앞에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며 다시 주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참된 회개가 일어날 때 굳은 심령이 녹고, 식었던 사랑과 열정에도 다시 불이 붙습니다.

  하나님은 뜨거운 열심을 품으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며, 마침내 하나님의 열심으로 모든 일을 성취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 역시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눅 12:49)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우리를 향한 그 열정의 정점은 바로 십자가였습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뜨거운지를 보여 주는 가장 분명한 증거입니다. 우리를 향해 뜨겁게 타오른 그 사랑을 바라볼 때, 식었던 우리 심령에도 다시 불이 붙습니다. 우리의 열정은 억지로 만들어 내는 불이 아닙니다.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주님의 사랑에 사로잡힐 때 살아나는 불입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식었던 심령이 다시 뜨거워지고, 우리의 남은 인생이 주님을 위해 거룩하게 타오르는 불꽃 같은 인생이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