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제가 맡고 있는 책임은 네 가지입니다. 가정의 가장, 교회의 담임목사, 전도 폭발 미주 본부 대표, 그리고 콘도 회장입니다. 그러다 보니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습니다. 이번 주에도 가정과 교회, 전도 폭발 사역과 콘도에서 크고 작은 문제들이 연이어 발생했습니다. 하나를 해결하고 나면 또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문제는 피할 대상이 아니라, 믿음으로 마주하고 다스려야 할 삶의 동반자입니다. 문제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바다에 파도가 끊이지 않듯 삶의 문제도 끊이지 않습니다. 어쩌면 문제가 전혀 없는 곳은 공동묘지뿐일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중요한 것은 문제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닙니다. 그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결해 가느냐입니다. 문제는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 찾아오는 적이 아닙니다. 우리를 성숙하게 만드는 스승이자, 하나님께서 새로운 은혜로 들어가게 하시는 문입니다.
문제는 같아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면 결과는 전혀 달라집니다.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은 문제 자체보다 그것을 절망으로 규정해 버리는 마음입니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현실은 바꿀 수 없지만, 현실을 바라보는 눈은 바꿀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똑같은 현실도 어떤 눈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절망이 되기도 하고 소망이 되기도 합니다. 한 걸음 물러나 문제의 본질을 차분히 살펴보면 막연한 두려움은 줄어들고, 해결의 길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외면할수록 두려움이 커지지만, 담대하게 직면하면 의외로 길이 열립니다. 우리의 지혜와 능력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면 두려움 대신 소망이 생깁니다. 하나님은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내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문제를 막다른 골목이 아닌, 더 깊은 세계로 초대하시는 하나님의 초청장으로 여기십시오.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문제는 그저 기적의 재료일 뿐입니다.
성경의 인물들은 문제 한가운데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열두 해 동안 혈루증으로 고통받던 여인은 절망 대신 믿음을 선택했습니다. 로마 백부장은 사랑하는 하인의 병을 안고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맹인 바디매오는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사람들은 불가능하다고 말했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바울 사도도 억울한 옥고와 풍랑, 그리고 평생 자신을 괴롭힌 육체의 가시 속에서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고린도후서 4:8)라고 고백했습니다. 바울은 문제가 사라졌기 때문에 담대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믿음은 문제보다 하나님을 더욱 크게 바라보는 거룩한 능력입니다.
우리 힘으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먼저 문제 해결자이신 하나님께 그 문제를 가지고 나가십시오.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고 겸손히 성령님의 도움을 구할 때, 하나님은 환경뿐 아니라 우리 자신을 먼저 변화시키십니다. 복잡하게 얽힌 인생의 문제일수록 해결의 출발점은 단순합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기도하며, 말씀을 붙들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찾아오는 문제는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욱 깊이 만나고 믿음을 성숙하게 하도록 허락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문제를 피하지 마십시오. 믿음으로 주님께 가져가십시오.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문제가 장애물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통로가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