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나’라는 신(神)을 열렬히 숭배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세상은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며 영혼의 선장이라고 부추기고, 철저히 ‘나답게’살라고 속삭입니다. 그러다 보니 공동체의 가치보다 나의 만족이 우선시되고, 하나님의 뜻보다 내 생각이 기준이 되기 쉽습니다. 코미디언 조지 칼린은 이러한 인간의 모습을 “나보다 느리게 운전하는 사람은 전부 멍청이고, 나보다 빠르게 운전하는 사람은 전부 미친 사람이다.” 라고 풍자했습니다. 결국 모든 판단의 기준은 ‘나’입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신앙생활에도 그대로 스며듭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기보다 내게 편리한 방식을 선택하고, 말씀보다 내 생각과 감정을 앞세우며, 하나님의 뜻보다 내 만족을 우선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자유로운 삶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돈과 성공, 사람의 인정에 끌려다니고 욕망에 지배당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신앙은 나를 중심에 두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는 삶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가치관과 정반대의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태복음 16:24). 수요일마다 묵상하는 사사기는 그 원리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그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사사기 17:6). 당시 이스라엘에 정말 왕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전히 그들의 참된 왕으로 계셨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왕이 아니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데 있었습니다. 각자가 스스로 왕이 되어 자기 생각과 판단, 편리함을 따라 살았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영적 혼란과 타락의 길로 끝없이 추락했습니다. 신앙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순간은 하나님을 버릴 때가 아니라, 하나님보다 내 생각을 더 신뢰하기 시작할 때입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돈과 성공, 건강과 가족을 지나치게 의지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보다 더 깊숙이 자리 잡은 우상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우리 마음의 왕좌에는 하나님이 아니라 내가 앉아 있으려 할 때가 많습니다. 이러한 자기 중심성을 잘 보여주는 비유가 있습니다. 레너드 스위트는 내 중심의 삶을 뜻하는 알파벳 ‘I’ 위에 가로줄을 그어 십자가(†)를 만드는 순간, 비로소 ‘나(I)’라는 존재가 지워진다고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우리 안에 깊이 자리 잡은 자기 숭배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십자가 앞에서만 우리는 왕의 자리에서 내려와 하나님을 참된 왕으로 모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편안함을 추구하는 종교가 아니라 순종을 배우는 신앙입니다. C. S. 루이스는 “당신을 편안하게 해줄 종교를 찾는다면, 나는 결코 기독교를 추천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희생 없는 헌신, 손해 없는 순종, 십자가 없는 영광은 성경이 말하는 신앙이 아닙니다. 참된 신앙은 편리함이 아니라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중요한 결정 앞에서  “내게 무엇이 가장 편리한가?”가 아니라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를 질문해 보세요. 조금 불편하고 손해를 보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길을 선택하십시오. 그 길이 비록 좁고 협착해 보여도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이며,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길입니다. 신앙은 편리함이 아니라 순종입니다. 우리 삶에는 왕좌가 하나뿐입니다. 그 자리에 내가 앉으면 우상이 되고, 하나님이 앉으시면 예배가 됩니다. 오늘도 기꺼이 왕좌에서 내려와 왕 되신 예수님을 모십시오. 그 길이 가장 자유로운 길이며 복된 길입니다. 그 길 끝에서 다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쁨으로 맞이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