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사랑의 매뉴얼 같은 룻기 말씀을 묵상하며 큰 은혜를 누렸습니다. 특히 젠틀맨 보아스가 룻을 챙기는 섬세하고 애틋한 사랑에 마음이 짠했습니다. 보아스를 통해, 사랑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보아스는 기업 무르기, 곧 고엘 제도를 통해 나오미와 룻의 가정을 끝까지 품었습니다. 단순히 불쌍히 여긴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책임졌습니다. 보아스의 모습을 보면서 사랑은 결국 책임지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많은 사람이 사랑을 감정으로 생각합니다. 가슴이 뛰고 설레는 것을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감정은 계절과 같습니다. 뜨거워졌다가도 식고, 상황에 따라 흔들립니다. 만일 사랑이 감정에만 머문다면 오래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진짜 사랑은 감정에서 끝나지 않고 책임으로 이어집니다. 사랑은 마음이 뜨거울 때 시작되지만, 책임질 때 완성됩니다. 책임지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욕망일 수 있습니다. 사랑은 상대를 품고 끝까지 함께 걷는 결단입니다.
책임은 맡은 일을 하는 것을 넘어 그 결과까지 감당하는 것입니다. 진짜 책임은 좋은 날만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날에도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은 책임을 통해 성숙해집니다. 부모는 자녀를 책임지며 부모가 되고, 지도자는 공동체를 품으며 지도자가 됩니다. 책임을 외면하는 사회는 무너지고, 책임을 회피하는 관계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결혼도 마찬가지입니다. 결혼은 단지 좋아서 함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좋지 않은 날에도 함께 있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래서 결혼은 사랑의 감정보다 책임의 언약에 더 가깝습니다. Erich Fromm은 그의 책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은 기술이며 책임이고 존중이며 돌봄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랑은 말보다 오래 남아야 하고, 감정보다 깊어야 합니다. 결국 사랑은 책임과 헌신으로 증명됩니다.
예수님은 책임지는 사랑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 13:1)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끝까지 가는 사랑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사랑한다고 말씀만 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의 죄와 허물, 실패와 연약함까지도 껴안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 사랑의 가장 강력한 책임 선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고, 사랑하신 우리를 끝까지 책임져 주셨습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우리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시기까지 우리를 붙드셨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 사랑의 감정 표현이 아니라 책임지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하나님은 나를 끝까지 책임지시는 분”임을 깨닫게 됩니다.
가정은 책임의 기초 위에 세워집니다. 부모가 책임을 감당할 때 자녀는 건강하게 자랍니다. 부부가 서로를 끝까지 지켜줄 때 가정은 든든히 세워집니다. 교회 역시 서로를 책임지는 사랑 위에 세워집니다. 힘들면 떠나고, 싫으면 쉽게 포기하는 시대에 끝까지 곁을 지켜주는 사람은 더욱 귀합니다. 가족을 위해 묵묵히 일하는 부모님, 포기하지 않고 가정을 지키는 부부, 말없이 눈물로 자녀를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봅니다. 가정의 달을 맞아 우리 가정은 서로에게 책임지는 사랑을 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시길 바랍니다. 희생과 헌신, 책임이 빠진 사랑은 뿌리가 약해 쉽게 흔들립니다. 그러나 책임을 다할 때, 가정은 견고하게 세워집니다. 끝까지 지켜주는 책임 있는 사랑을 통해 우리의 가정과 공동체가 더욱 건강하게 세워지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