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마지막 장편소설은 『부활』입니다. 그는 자신의 신앙과 삶의 정수를 이 작품에 담아냈습니다. 주인공 네홀류도프는 자기 집에서 일하던 카츄사와의 관계로 그녀를 비참한 삶으로 내몰았고, 결국 그녀는 잘못된 재판까지 겪으며 시베리아 유형 길에 오르게 됩니다. 이 모든 일 앞에서 네홀류도프는 깊은 죄책감을 느끼고, 그녀와 함께 시베리아로 가기로 하며 책임을 지려 합니다. 그러던 중 산상설교를 읽으며 그의 내면에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자신의 영지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로 결단합니다. 톨스토이는 이러한 내면의 변화와 삶의 변혁을 ‘부활’이라고 보았습니다. 부활은 단지 죽은 뒤의 사건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난 사람이 지금 여기서 새사람으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부활은 무덤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회개로부터 시작됩니다. 참된 부활은 예수님 안에서, 바로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시작됩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정복하신 유일한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요 11:25–26)라고 선포하셨고, 그 말씀대로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성서학자 윌리엄 바클레이는 “부활 없는 기독교는 더 이상의 존재 의미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만약 예수님의 이야기가 십자가로 끝났다면, 기독교는 단지 역사적 사건이나 윤리적 가르침에 머물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심으로, 기독교 신앙은 분명한 기초 위에 세워졌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분이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참 하나님이시고,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주님이심을 증명합니다. 동시에 우리도 장차 예수님과 같이 부활하게 될 것이라는 확실한 소망과 보증이 됩니다. 부활은 교리가 아니라, 오늘 우리 삶을 붙드는 능력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예수님은 위대한 성인 중 한 사람에 불과합니다. 만약 예수님이 사망 후 그대로 무덤에 갇혔다면 예수님은 공자나 석가, 소크라테스처럼 지혜로운 스승으로만 기억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그 승리의 증거가 바로 우리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 부활 신앙 때문에 목숨을 내놓았습니다. AD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기까지 무려 삼백만 명 이상의 성도들이 불에 타거나 목이 잘려 죽었습니다. 일부는 십자가에 매달리거나 짐승에 찢기는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 안에 있는 부활 신앙이 죽음 앞에서도 담대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사자 굴은 아니더라도, 오늘날 우리를 짓누르는 우울과 무기력의 무덤에서 주님은 우리를 일으켜 세우십니다.
예수님의 삶의 결론은 부활입니다. 우리 삶의 결론도 마찬가지입니다. 부활은 미래의 사건만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 삶 속에서 역사하는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하거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소망 중에 즐거워하고, 환난 중에 인내하며, 지금의 삶을 믿음으로 살아가십시오. 참된 부활 신앙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삶 속에서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부활절이 단지 하루의 기념이 아니라, 일 년 365일의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무덤은 끝이 아닌 시작입니다. 오늘, 미워하던 사람을 용서하는 그 순간 그곳에서 부활이 시작됩니다. 절망 속에서도 감사하는 그 순간, 그곳에서 부활이 일어납니다. 부활은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내는 것입니다. 지금, 부활의 삶을 사십시오. Jesus Christ is risen. Happy Ea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