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통계학자 한스 로슬링은 그의 책 [팩트풀니스]에서 사람들이 세상을 오해하게 만드는 열 가지 본능을 소개합니다. 그중 하나가 공포 본능입니다. 공포 본능은 위험을 과대평가하고, 두려운 것에 지나치게 많은 주의를 집중시키는 경향입니다. 예를 들어 전 세계적으로 테러로 사망하는 사람은 연간 약 2만 명 수준입니다. 반면 알코올로 인한 사망자는 연간 300만 명, 담배 관련 사망자는 연간 700만 명에 이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테러를 더 두려워합니다. 이유는 미디어가 테러 사건을 반복적으로 보도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세상이 점점 더 위험해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로슬링은 두려움을 무시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두려움이 생길 때, 잠시 멈추고 ‘이것이 실제로 위험한가? 통계를 보면 어떤가? 우리 사회에 어떤 안전장치가 있는가?’를 질문하라고 합니다. 두려움이 행동을 이끌 때 에너지가 잘못 사용되어, 진짜 위험을 놓친다는 것입니다. 

  사실 문제는 세상이 아니라 우리의 시선입니다. 우리는 위험보다 두려움에 더욱 집중하며 살아갑니다. 두려움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인간의 생존 본능 자체가 두려움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런 인간의 연약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경 곳곳에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이는 두려움이 없는 세상을 약속하기보다,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삶을 가르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두려움은 다양합니다. 자녀 문제, 직업과 경제, 건강과 질병, 미래와 노후, 심지어 죽음에 대한 두려움까지 있습니다. 문제는 두려움이 마음을 지배하기 시작하면 우리 삶이 크게 위축된다는 것입니다. 두려움은 사람을 소심하게 만들고, 모든 상황을 방어적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결국 두려움이 커질수록 기쁨은 사라지고 삶은 점점 축소됩니다.

  하나님은 두려움에 대한 분명한 해결책을 제시하십니다. 그것은 상황을 바라보는 대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두려움이 밀려올 때 우리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문제에 고정됩니다. 그러나 믿음은 시선을 다시 하나님께로 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순간 두려움의 크기는 달라집니다. 예수님은 “세상 끝날까지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임마누엘의 약속은 모든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가장 큰 근거입니다. 두려움이 밀려올 때,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마음을 잘 지키십시오. 믿음은 상황이 두렵지 않아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붙잡을 때 자라납니다. 시편 기자는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시편 34:4)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순간 두려움은 힘을 잃기 시작합니다. 

  이 시대는 두려움이 점차 증가하는 시대입니다. 세계 곳곳에서 들려오는 전쟁과 테러 소식은 우리를 불안하게 합니다. 그러나 참된 평안은 문제가 없는 곳이 아닌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곳에 있습니다. 갈릴리 호수의 풍랑 한 가운데서 제자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예수님은 배 안에서 평안히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이 두려워 예수님을 깨웠을 때, 예수님은 풍랑을 잔잔하게 하셨습니다. 우리 삶에도 풍랑은 찾아옵니다. 그러나 풍랑보다 더 큰 예수님이 우리 풍랑도 잔잔하게 하십니다. 두려움이 커질수록 하나님을 더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을 바라보면 문제는 작아지고 하나님은 커집니다. 여호와 살롬의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키셔서, 두려움이 아닌 평강 가운데 살아가게 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