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장 주목받는 뉴스 가운데 하나는 휴머노이드입니다. 로봇이 계속 진화해서 거의 인간의 수준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인간의 일이 점점 로봇으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과학과 기술은 쉼 없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신앙은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때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신앙은 정체 상태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나가든지, 뒤로 물러서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프랜시스 쉐퍼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성장하지 않으면 설득력을 잃는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더 알고자 하는 갈망이 멈추는 순간, 신앙은 쇠퇴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영적 성장은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성장은 더 많은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닌, 더 깊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더 넓게 이웃을 품는 변화입니다. 영적 성장은 자기중심적인 신앙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하는 순간 시작됩니다. 우리 모두 영적 성장에 대한 열망을 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심어 주신 선물 가운데 하나는 성장 본능입니다. 모든 생명체는 하나님의 디자인 안에서 성장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사람은 성인이 될 때까지 계속 자라고, 나무도 죽을 때까지 자랍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을 떠나는 날까지 영적으로 자라야 할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속에는 우리를 향한 분명한 비전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성숙한 사람의 삶에는 말보다 먼저 예수님의 성품이 드러나고, 선택과 관계 속에서 그분의 인격이 흘러나옵니다. 예수님으로 충만한 삶이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과 영혼 안에 미숙하고 불완전한 영역이 있다면 진리 안에서 회복되기를 구해야 합니다. 자녀의 성장을 바라보는 부모가 기뻐하듯, 하나님도 자녀 된 우리의 성장과 성숙을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예수 믿고 거듭나 새사람이 되었지만, 아직 부활의 몸을 입지는 않았습니다. 완전히 제거되지 않은 옛사람의 습성이 우리 안에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까지 불완전한 존재로 살아갑니다. 그런데도 성경은 우리를 성도라 부릅니다. 성도는 영어로 Saint, 곧 ‘성자’라는 뜻입니다. 우리를 성자라 부른다면 우리는 아마 당황할 것입니다. 그러나 흠 많고 연약한 우리를 성자라 부르시며 이끌어 가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용서하시고, 받아주시고, 사명을 맡기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완전해서 부른 것이 아니라, 장차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 성자라 불러 주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며 현재의 모습에 안주하지 말고 예수님의 수준까지 자라기를 더욱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성장할 때 기쁨을 느낍니다. 배움이 멈추면 성장은 멈추고 성장이 멈추면 신앙은 정체됩니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성장을 멈추는 순간 삶은 서서히 죽기 시작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신앙은 저절로 자라지 않습니다. 의지적인 배움과 훈련을 통해서만 성장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딤전 4:15)라고 권면했습니다. 하나님은 자라게 하시지만, 자라기를 선택하는 책임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성경은 영적 성숙에 갓난아기, 어린아이, 청년, 그리고 아비의 단계가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어느 단계에 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계속 자라고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성장은 언젠가의 과제가 아니라, 오늘 순종해야 할 부르심입니다. 양육 훈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