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꼭 마쳐야 할 일이 있어 마음이 매우 조급해졌습니다. 여유를 잃은 채 지내다 가, 사소한 일로 큰아들과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화를 낼 일이 아니었는데, 순간을 참지 못하고 버럭 화를 냈습니다. 평화롭던 집안 분위기가 저 때문에 깨졌습니다. 조금만 멈췄더라면, 한 박자만 쉬었더라면 없었을 일이었습니다. 아들과 관계를 회복했지만, 가장으로서 마음 한편이 부끄럽고 씁쓸했습니다. ‘나는 왜 아직도 이 모양인가?’ 하는 자책도 들었습니다. 이 일을 통해 다시 깨닫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힘은 능력이 아니라 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품은 약함이 아닙니다. 품은 힘입니다. 약해서 품는 것이 아니라, 강하기 때문에 품습니다. 큰 사람은 이긴 사람이 아니라, 더 많이 안아 준 사람입니다. 사람의 크기는 말의 크기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가로 결정됩니다.

  그렇다면 믿음이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흔히 충성, 봉사, 헌신, 기도를 떠올립니다.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신앙의 성숙은 결국 관계에서 드러납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가 건강하다면 그 사람은 믿음이 성숙한 사람입니다. 반대로 늘 갈등과 상처가 반복된다면, 그 믿음은 아직 자라나는 중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믿음이 자란 사람의 특징은 분명합니다. 품이 넓습니다. 쉽게 배척하지 않고, 함부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언어가 ‘영접’이고 ‘수용’이며 ‘아멘’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믿음이 흔들릴수록 사람을 거절하고, 밀어내고, 정죄하게 됩니다. 말이 거칠어지고 마음이 좁아집니다. 그래서 믿음의 깊이는 기도의 분량보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먼저 드러납니다. 신앙은 하나님 앞에서만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 앞에서 부드러워질 때 비로소 성숙해집니다.

  교회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공동체입니다. 남녀노소, 성격과 배경이 모두 다르기에 교회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래서 교회에는 넓은 품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가슴을 닮지 않고서는 함께 갈 수 없습니다. 성경은 한 사람의 넉넉한 태도가 얼마나 큰 생명을 살리는지를 보여 줍니다. 마태는 요셉을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마 1:19) 요셉의 의로움은 옳고 그름을 가리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정죄할 수 있었지만, 침묵으로 품는 길을 택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의로움입니다. 예수님의 품 또한 그러합니다.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넓은 그 품으로, 누구든지 나아오는 사람을 안아 주십니다. 우리가 오늘도 숨 쉬며 살아 있는 이유는, 정죄보다 품기를 선택하신 예수님의 넓은 가슴 때문입니다.

  세상이 각박해질수록 품이 넉넉한 사람은 점점 귀해집니다. 옳긴 옳은데 차가운 사람, 정의롭지만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따뜻하고, 부드럽고, 함께 있고 싶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옳기 위해 사람을 잃고, 이기기 위해 관계를 잃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마지막에 남는 것은 논리가 아니라, 품어 준 사람의 얼굴입니다.사람을 받아주고 용납하는 사람이 공동체를 살립니다. 허물 많은 우리를 끝까지 품어 주신 예수님의 가슴을 기억하십시오. 멀리 있는 사람이 아니라, 가까이 있는 사람부터 품어 주기를 시작하십시오. 감정이 요동칠 때, 화살기도를 통해 한 박자 멈추는 연습을 해 보세요. 넓은 품은 타고나는 성격이 아니라, 훈련의 결과입니다. 성령님의 도움으로 누구라도 안을 수 있는 품이 넉넉한 예수님 닮은 사람으로 살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