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이 다가오면 생각나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학창 시절, 12월 24일 저녁이면 교회로 모여 성탄 축하 잔치를 가졌습니다. 행사가 끝나면 집에 가지 않고 2부 순서를 가졌습니다. 연탄난로를 피우고 주위에 동그랗게 모여앉아 게임과 선물교환, 성탄 카드를 주고받았습니다. 그렇게 밤을 하얗게 지새우고 동이 트기 전에 새벽송을 돌았습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힘차게 부르며 골목골목을 누볐습니다. 그 시간에 다른 교회들도 함께 새벽송을 돌았기에, 성탄절 새벽은 온 세상이 교회가 된 듯했습니다. 간밤에 눈이 왔을 때는 더욱 발걸음이 가벼웠습니다. 집마다 과자와 과일 등 음식을 내어주었고, 장로님 댁에서는 떡만두국을 대접해 주셨습니다. 갓 담근 김치와 시원한 동치미 국물이 어우러진 떡만두국은 단연 최고였습니다. 그렇게 떡만두국을 배부르게 먹고 교회로 돌아와 성탄절 예배를 드렸습니다. 춥고 배고프고 가난했던 시절의 성탄절 풍경화입니다. 

  성탄절은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날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탄절을 지키라고 명령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도 자신의 생일을 기념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자기 죽음을 기억하고, 그 돌아가심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예수님의 탄생을 축제일로 지키라는 명령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성탄절을 기념하는 이유는 ‘구원’ 때문입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을 떠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고, 마침내 우리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어거스틴은 성탄과 관련하여, “하나님은 인간이 되셨다. 인간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 위하여”라고 말했습니다. 성탄절은 그 십자가를 향한 첫걸음이며, 하나님의 구원이 시작된 날입니다. 

  성탄절에 드러나야 할 분은 단연 ‘예수님’입니다. 주인공이신 예수님이 가장 돋보이고 높임과 영광을 받으셔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예수님은 종종 뒷전으로 밀려납니다. 여행 계획, 송년회 일정, 선물 준비가 성탄절의 중심이 되곤 합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인들조차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기보다 바쁜 연말 분위기에 휩쓸릴 때가 많습니다. 이번 성탄절에는 우리 시선을 예수님께로 향하면 좋겠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성탄절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며 경배하는 일에 최우선순위를 둡시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하나님은 인간의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오셨다. 그곳이 바로 사랑이 시작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라고 성탄을 정의했습니다. 우리에게 독생자를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그 사랑을 가족, 이웃과 나누는 성탄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탄절은 기독교의 성일(聖日)중 하나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탄의 기쁨은 소비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성탄의 동기는 사랑이고, 성탄의 방법은 나눔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기 위해 성육신하신 것처럼, 우리도 이웃의 자리로 다가가야 합니다. 우리 곁에는 힘겹게 보내는 이웃이 많습니다. 성탄절은 그들을 외면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초대입니다. 멀리 있는 누군가가 아니라, 내 곁의 한 사람을 떠올리며 작은 선물 하나, 식사 한 끼, 혹은 진심 어린 기도와 위로의 말을 건네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의 손과 발이 되어 예수 사랑과 복음을 나눌 때, 성탄은 비로소 완성됩니다. 우리와 우리 교회를 통해 주변이 예수님으로 충만하기를 소망합니다. 성탄의 기쁜 소식이 교회 안에만 머물지 않고 온 세상으로 널리 흘러가기를 축복합니다. Merry Christm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