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저는 샌안토니오 감리교회에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44년 역사의 샌안토니오 감리교회는 현재 배혁 목사님이 담임하고 계십니다. 배 목사님과의 만남은 전도폭발훈련에서 시작되었습니다. 2시간의 시차 때문에 밤 11시에 끝나는 고된 훈련이었지만, 목사님은 2단계까지 성실히 마치셨습니다. 다리 수술 중에도 포기하지 않고 훈련을 감당하셨습니다. 그 헌신이 마음에 남아 격려하고자 방문했는데, 오히려 제가 더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육체적인 어려움과 교회의 여러 도전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목회에 전념하시는 목사님과 사모님의 모습은 제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이 만남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을 묵상했습니다. 돌아보면 하나님은 언제나 사람이라는 통로를 통해 일하셨습니다. 만남은 하나님의 은총이 담긴 사건이며, 만남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소중히 여기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한 번의 만남이 인생 전체를 송두리째 바꿉니다.

  삶은 만남의 연속입니다. 인생은 만남을 통해 신비롭게 빚어져 갑니다. 만남은 우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입니다. C.S. 루이스는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섭리를 입은 방문자”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정교한 만남의 손길을 통해 우리 삶을 이끌어가십니다. 그래서 만남을 잘 가꾸는 사람은 풍요로워지고, 만남을 소홀히 여기는 사람은 기회를 잃게 됩니다. 첫 만남은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그 이후의 관계는 우리의 책임입니다. 톨스토이는 “사람이 위대해지는 것은 위대한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 아니라, 만남을 위대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만남은 정원을 돌보듯 정성과 노력을 기울여야 열매를 맺습니다. 만남의 책임은 하늘에 있고, 관계의 책임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좋은 만남은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우리가 정성을 다해 가꾼 결과입니다. 

  사람과의 만남이 중요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만남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과의 만남입니다. 사람과의 만남은 이 땅에서 끝나지만, 예수님과의 만남은 영원까지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예수님과의 만남으로 인생이 대박 난 사람이 많습니다. 마태는 그 이름의 뜻이 ‘선물’이었습니다. 부모가 하나님의 선물 같은 사람이 되라고 좋은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러나 마태는 동족의 미움을 받는 세리로 ‘괴물’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과의 운명적인 만남을 통해 선물 같은 인생을 회복했습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이 없었다면, 멸시와 손가락질을 받으며 돈맛에 취해 살다가 비참하게 끝날 인생이었습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신약 성경 제1권 마태복음의 저자로 선물 같은 인생을 살았습니다. 좋은 만남은 인생을 바꾸지만, 예수님과의 만남은 영원을 바꿉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내가 만난 사람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습니다. 현재의 나는 지금까지 만난 사람의 총합입니다. 인생은 결국 누구를 만났는가의 기록입니다. 좋은 만남은 축복이 되고, 잘못된 만남은 저주가 됩니다. 좋은 만남은 보약과 같고 나쁜 만남은 독약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만남을 통해 우리를 이끌어 주셨습니다. 앞으로도 만남의 은혜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좋은 만남은 우연이 아닌 선택과 결단의 결과입니다. 만남이 결실을 보려면, 관계라는 정원을 정성껏 가꾸어야 합니다. 만남을 신실하게 잘 가꾸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풍성한 열매로 보답하십니다. 우리 인생은 만남으로 빚어지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길에 허락하신 만남을 소중히 여기며, 잘 가꾸어 풍성한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