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로마서를 묵상하며 가슴이 뜨겁습니다. 바울은 로마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롬 2:13)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말씀을 아는 것보다, 사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진정한 예수님 제자는 지식이 아닌 삶으로 증명됩니다. 믿음은 알고 생각하는 것을 넘어 삶으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존 맥스웰은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아느냐가 아니라, 아는 것을 얼마나 살아내느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프랑스의 작가 앙드레 지드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책 속의 문장에 밑줄을 긋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밑줄을 긋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세상은 성경책이 아닌 우리 삶을 읽습니다. 성경에 밑줄을 긋는 것은 단지 시작일 뿐입니다. 진짜 시험지는 삶입니다. 성경 밑줄보다 삶의 밑줄이 설득력이 훨씬 큽니다. 삶에 밑줄이 그어진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우리는 중요한 내용에 밑줄을 긋습니다. 우리가 아끼는 성경책을 펼치면 수많은 밑줄이 형형색색으로 그어져 있습니다. 또 우리가 보관하고 있는 기독교 관련 서적도 빼곡한 밑줄과 동그라미, 메모 등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삶입니다. 성경 속 밑줄은 빛나는데, 정작 우리의 일상은 희미합니다. 무엇보다 성경과 경건 서적에 가득 찬 밑줄과 메모만큼 변화가 일어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제는 성경이나 각종 서적에 밑줄을 긋는 대신 우리 삶에 밑줄을 긋기를 바랍니다. 헬렌 켈러는 “성경에 밑줄을 긋는 것도 좋지만 성경이 당신 삶에 밑줄을 긋게 하라.”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심혈을 기울여 밑줄을 그어야 할 대상은 삶입니다. 우리 가정, 교회, 직장, 사업장은 우리가 정성스레 공들여 밑줄을 그어야 할 도화지입니다.
신앙은 단순히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개념도 아니고, 교리 시험을 위한 지식도 아닙니다. 신앙은 살아 있는 생명입니다. 신앙은 몸의 언어로 드러나야 합니다. 삶에서 보이고, 행동으로 증명되고, 일상 속에서 살아 숨 쉬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 신앙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삶 그 자체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신앙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신앙은 피상적인 지식의 유희가 아닙니다. 지친 영혼을 잠시 달래는 각성제나 마취제도 아닙니다. 신앙은 내 몸을 불태워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글 속에 갇혀 계시지 않았습니다. 오랜 관습에도 묶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문제 많은 삶의 한가운데로 오셔서 우리와 함께 사셨습니다. 말씀으로만 가르치지 않으시고, 삶으로 본을 보이며 행동하신 실천가이셨습니다.
예수님처럼 삶의 밑줄로 복음을 증명하십시오. 세상은 우리의 입술보다 삶을 더 크게 읽습니다. 머리로만 하는 성경 공부에서 멈추지 맙시다. 성경의 가르침을 가슴에만 새기지 말고 손과 발까지 흘러가게 하십시오. 우선 작은 것부터 시작해 보십시오. 처음 만난 사람에게 미소를 짓고 인사를 건네 보십시오.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 손을 내밀어 보십시오. 힘들어하는 이웃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작은 도움이라도 나누어 보십시오. 눈물 흘리는 사람의 눈물을 닦아 주고, 꼭 안을 수 있는 사랑을 실천해 보십시오. 실천할 때 비로소 말씀의 능력을 체험합니다. 이제는 성경 말씀에 밑줄을 긋는 대신, 예수님의 손과 발이 되어 한 줄 복음을 써 내려가십시오. 우리의 삶이 곧 세상에 보내는 하나님 나라의 편지가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