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화를 얼마나 내시나요? 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남성은 일주일에 평균 6번, 여성은 3번 정도 화를 낸다고 합니다. 남성이 여성보다 화를 더 자주, 그리고 더 폭력적으로 표현한다고 하며, 그 장소는 다름 아닌 가정이 가장 많습니다. 가정은 외부의 시선이 없는 가장 사적인 공간이며, 평생 함께해야 할 관계라는 이유로 감정의 절제가 느슨해지기 쉽습니다. 이상하게도, 가장 사랑해야 할 사람들에게 우리는 가장 쉽게 분노합니다. 범죄 통계에 따르면, 범죄의 45.5%가 분노에서 비롯된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위험(danger)이라는 단어에서‘d’자를 하나 빼면 화(anger)가 됩니다. 다시 말해, 분노는 이미 위험의 시작입니다. 화는 망치와 같습니다. 무언가를 때려 부술 수도 있고, 반대로 무언가를 세우는 데도 쓸 수 있습니다. 잘 다스려진 분노는 정의를 위한 에너지가 될 수 있지만, 통제되지 않은 분노는 자신과 이웃 모두를 파괴하는 무기가 됩니다.

  우리는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느끼거나, 공평하지 않다는 판단이 설 때 분노를 느낍니다. 처음엔 참지만, 그 감정이 반복되면 ‘분노의 마일리지’가 쌓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사소한 계기로 폭발하게 되고, 이 일이 반복되면 우리는 충동적이고 공격적인 사람으로 변해갑니다. 무서운 것은 분노도 습관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분노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존재감을 과시하는 데 익숙해질 수 있습니다. “화를 내야 나를 무시하지 않는다, 화를 내야 일이 풀린다.”라고 생각하게 되면, 화는 어느새 권력의 수단이 됩니다. 분노는 강함이 아닌 제어되지 않은 연약함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마하트마 간디는 “분노는 잠깐의 광기이며 그 순간이 당신의 인생을 뒤엎을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쌓아놓은 것을 한순간에 무너뜨리기 때문입니다. 화나 분노에 중독되면 사람들이 피합니다. 외롭고 고독한 외톨이 인생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종종 ‘나는 욱하는 성격이지만 뒤끝이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미 ‘앞끝’으로 주변을 초토화해 놓은 상태입니다. 욱하는 성격은 없습니다. 단지 상처가 많이 쌓여 치유가 필요한 사람일 뿐입니다. 화는 지속되면 죄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성경은 “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성내는 자는 범죄함이 많으니라.”(잠언 29:22)라고 말씀합니다. 죄성을 가진 우리에게 화는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하나님도 화라는 감정 자체를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도 성전에서 의분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나 그 감정이 우리를 지배하게 두는 것,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마귀가 틈을 타서 죄짓는 자리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감정을 잘 조절해서 사탄·마귀의 노리갯감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분노는 성령님을 근심시키고 하나님의 역사에 제동을 겁니다. 하나님 나라 확장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합니다. 톨스토이는 “누군가에게 화를 낼 때는, 반드시 후회할 준비도 함께하라.”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화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화를 어떻게 다루느냐는 전적으로 우리 책임입니다. 화가 날 때마다 성령님의 도움을 구하십시오. 우리 안의 열을 식히는 하나님의 평강의 강물이 흘러들어오도록 기도하십시오. 화를 다스린다는 것은 곧 자기중심적인 본능을 십자가에 못 박는 영적 행위입니다. 진짜 강한 사람은 감정을 폭발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다스리는 사람입니다. 감정을 통제하는 사람이 인생을 지배합니다. 성령님께 감정을 맡기고 분노를 넘어서는 성령으로 사람으로 살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