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에 “어떤 상처는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고, 영원히 흉터로 남는다.”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살다 보면 누구나 마음속에 상처 하나쯤은 안고 살아갑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마음 깊은 곳에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아픔이 숨어 있습니다. 어릴 적 받은 외면, 이해받지 못한 슬픔, 억울했던 기억, 사랑받고 싶었으나 거절당했던 마음… 이런 상처들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 믿으며 묻어두지만, 사실은 고스란히 남아 우리 관계를 흔들고 감정을 왜곡시키곤 합니다. 결국 그 상처는 말과 행동으로 드러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또 다른 상처를 남기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상처를 그냥 두지 말고,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가져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겪을 수 있는 모든 고통과 상처를 친히 겪으셨고, 우리를 위해 상처투성이의 삶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상처를 온전히 이해하시고, 완전히 치유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상처 입은 치유자이십니다. 그분의 상처가 우리의 상처를 치유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통을 통해 인류의 상처를 짊어지셨습니다. 어떤 상처든, 어떤 고통이든 예수님은 다 치유하십니다. 우리는 때로 깊은 속마음을 사람에게 다 드러내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아픈 마음을 고백하면, 그분은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괴로운 기억, 좌절된 꿈, 죄책감, 원망, 자기 부정, 우울증, 두려움, 슬픔, 미움, 열등감 등의 부정적인 감정도 예수님은 다 치료하십니다. 예수님을 찾아간 사람들은 자기 안에 감당할 수 없는 상처를 품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상처는 예수님을 더 깊이, 더 인격적으로 만나는 재료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손에 닿는 순간, 어떤 상처도 새살이 돋고 새로운 생명이 시작됩니다. 그분의 사랑은 상처 입은 영혼을 회복시키는 가장 강력한 능력입니다.

  해결되지 않은 상처는 우리의 손발을 묶고, 귀한 인생의 시간을 허비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결국 그 상처는 남을 찌르고, 공동체를 병들게 만듭니다. 상처 입은 아버지는 자녀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 입은 어머니는 자녀에게 아픔을 대물림합니다. 목회자의 상처는 교회에 영향을 미치고, 지도자의 상처는 백성들에게 고스란히 전이됩니다. 상처를 숨긴 채 열정이나 재능, 스펙만으로 일하려 하면, 결국 그 상처는 더 크게 확대 재생산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깊이 내재한 상처를 찾아내고, 주님 앞에서 치유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상처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상처를 치유 받지 않고 사는 것이 진짜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 땅에 상처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그 상처를 어떻게 다루느냐가 그 사람의 삶을 결정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상처를 드러내시고, 만지시며 고쳐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상처가 있다면 예수님께 나아가십시오. 사람들은 앞에서는 위로하면서도, 뒤에서는 다르게 말합니다. 예수님께 드러낸 상처는 후유증도, 뒤끝도 없습니다. 신학자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사람들은 나의 약점을 보고 있을 때, 예수님은 나의 상처를 보고 계신다.”라고 말했습니다. 십자가에서 흘러내린 예수님의 보혈은 지금도 우리의 상처를 씻고, 정결하게 하며 회복시키십니다. 회복되지 않은 상처는 자신도 죽이고, 타인도 다치게 합니다. 그러나 치유 받은 상처는 사명이 됩니다. 아파본 사람이 아픔을 이해할 수 있고, 울어본 사람이 우는 자의 곁에 설 수 있습니다. 그때 상처는 더는 고통의 흔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은혜의 통로가 됩니다. 예수님처럼 상처 입은 치유자로 살아가십시오. 그 길이야말로 가장 예수님을 닮는 삶이며, 이 시대를 회복시키는 은혜의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