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찬 새해를 맞이했지만,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암울하기만 합니다. “역대 최악의 산불”로 명명된 화재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지난 목요일에 집사님 한 분이 대피 직전의 상황이라는 연락을 주셨습니다. 정말인지 확인하려는 순간, 제게도 대피를 준비하라는 ‘비상 경고(Emergency alert)’가 발송되었습니다. 무엇을 챙겨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했습니다. 20분 후, 잘못된 메시지였다며 무시하라는 안내가 와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러나 한 주 내내 화재에 대한 긴장이 가시질 않았습니다. 차량에 쌓여있는 잿가루와 매캐한 연기가 화재의 심각성을 더해줍니다. 요한계시록의 종말, 아마겟돈이 연상되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의 창문을 열고 비를 내려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시집살이가 무척 힘든 며느리가 있었습니다. 하루하루 죽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딸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친정엄마가 딸을 방문했습니다. 딸은 엄마와 산책하며 속상한 마음을 엄마에게 다 털어놓았습니다. 딸의 마음이 풀렸고, 엄마는 돌아가면서 딸에게 당부했습니다. “우리가 산책하던 길에 큰 나무가 있잖니. 힘들 때마다 그 나무 앞에 가서 엄마에게 하듯이 속상한 마음을 쏟아 놓으렴. 그러면 한결 속이 편해질 거야.” 딸은 시집살이가 힘들 때마다 그곳에 가서 아픈 마음을 토해냈습니다. 그렇게 1년을 보냈는데, 나무가 시들시들 죽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나무도 그녀의 아픔을 받아 내기에 힘겨웠던 모양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절망이 우리를 죽입니다. 품으면 내가 죽고 쏟아내면 남이 죽습니다. 그러므로 절망보다 희망을 자꾸 이야기하시길 바랍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된 것 같은 절망적인 상황을 맞이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절망적인 상황 그 자체가 문제이지 않습니다. 진정한 절망은 마음속에서 시작됩니다. 단지 마음의 절망만이 절망적인 상황을 만들 뿐입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형편은 최악이었습니다. 무엇 하나 남아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절망의 순간에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 구원의 손길, 하나님 도움의 손길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절망 한가운데서 목이 터져라 희망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면 희망이 생깁니다. 하나님이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절망 끝에서 희망의 작업을 시작하시는 분입니다. 절망의 골짜기에서 희망의 꽃을 찬란하게 피우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상황이나 환경을 보며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헨리 키신저는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절망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입니다. 절망 속에서도 삶은 계속됩니다. 절망의 순간에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성령님의 도움을 구하십시오. 절망 속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 성숙입니다. 절망은 우리 모두가 극복할 과제입니다. 에스겔 골짜기 마른 뼈에 성령님의 생기가 들어가자 살아서 군대가 되었습니다. 마른 뼈들은 희망이 없어 보였지만,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가자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바닥까지 내려가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습니까? 이제는 올라가는 길밖에 없습니다. 희망을 갖고 다시 시작하십시오. 하나님은 가장 어두운 골짜기에서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의 절대 절망을 절대 희망으로 바꾸십니다. 하나님과 함께 절망의 골짜기에서 희망의 꽃을 멋지게 피우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