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간에 노벨상을 주관하는 스웨덴 한림원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발표했습니다. 한국인 작가 한 강씨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이제는 문학도 K문학이라는 생각에 가슴 뭉클했습니다. 뉴스를 듣고 마당몰의 알라딘 서점으로 달려갔습니다. 문을 열기 전에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소년이 온다”를 구입하여 읽었습니다. 우선 기존 소설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시적이고 실험적인 산문 스타일로 몸과 영혼, 산자와 죽은 자 사이의 연결에 대한 인식도 특별했습니다. 작가의 천재성이 엿보이는 작품이었습니다. 내용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학생 시민군으로 활동한 소년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마지막까지 도청을 지키다 계엄군의 총에 쓰러졌습니다. 사랑하는 막내아들을 비명에 보낸 어머니의 가슴 아픈 넋두리가 눈물겨웠습니다. 노벨문학상이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아픔을 치유하는데 쓰여지기를 기원합니다.
노벨상은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화학자이며 사업가였던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으로 제정되었습니다. 1901년에 처음으로 물리, 화학, 생리·의학, 문학, 평화 등의 분야에 상을 주었습니다. 그러다가 1968년에 경제 부문이 추가되었습니다. 노벨상은 100년 넘는 전통, 권위, 명예 못지않게 상금으로도 유명합니다. 올해 노벨상의 상금은 1,100만 크로나(약 1백만불)로 책정되었습니다. 노벨이 큰 상을 제정한 이유가 있습니다. 형 루드빅 노벨이 사망했을 때, 프랑스의 한 신문이 알프레드 노벨이 죽은 줄 알고 “죽음의 상인 죽음을 맞다. 많은 인간을 빠르게 죽이는 방법을 발명해 부자가 된 알프레드 노벨 박사가 어제 사망했다”라는 오보 기사를 냈기 때문이었습니다. 노벨은 자신을 ‘죽음의 상인’으로 부른 것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오보 사건이 노벨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어 자신의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노벨상을 제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노벨은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지를 고민했습니다. 인류가 자신을 죽음의 상인이 아닌 과학의 후원자로 기억해 주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노벨 재단을 설립했고, 인류에 위대한 공헌을 한 사람에게 상을 주기로 했습니다. 그의 뜻대로 노벨은 아름다운 수식어로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우리 이름 앞에는 어떤 형태로든 수식어가 붙습니다. 어떤 사람은 참 아름다운 수식어가 이름 앞에 붙습니다. 반면 어떤 사람은 불미스러운 수식어가 붙습니다. 우리 이름이 불릴 때, “하나님의 사람, 신실한 그리스도인, 충성스러운 사람”등의 아름다운 수식어가 붙기를 바랍니다. 한국은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에 이어, 두 번째로 노벨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잔치 분위기입니다. 노벨상은 수상한 개인뿐만 아니라 가정, 국가 모두의 자랑이며 영광입니다. 고국에서 계속해서 노벨상 수상자들이 나오기를 소원합니다.
상중의 최고의 상은 하나님께 받는 상입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 22:12)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장차 예수님 앞에 서는 날, 행한 것에 따라 상을 받게 됩니다.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께 받는 상이어서 그 영예는 최고조에 이를 것입니다. 예수님께 받을 상을 기대하며 각자 삶의 자리에서 최선으로 살기를 소원합니다. 새생명축제가 다음 주로 다가왔습니다. 천국 상급을 소망하는 사람답게 태신자(VIP)에게 사랑과 관심이 더욱 향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부어주셔서 이번 새생명축제를 통해 많은 영혼이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