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시대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이쿠스라는 감찰관이 있었습니다. 그는 로마 군대가 진군할 때마다 늪지대를 만나 행군 속도가 느려지는 것을 고민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늪지대에 자갈과 돌을 깔아 포장도로를 만들었습니다. 로마는 이 도로를 통해 군대와 물자를 신속히 이동시켜 대제국의 기틀을 다질 수 있었습니다. 이 도로 가 그 유명한 아피아가도입니다. 오늘날 고속도로의 기원입니다. 이 도로 중간에 거리를 표시한 돌을 세웠는데, 이것을 마일스톤(이정표)이라고 합니다. 한 사람이 깊어져서 세상, 인생, 영원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마일스톤 같은 것이 있습니다. 시련, 절망, 뼈아픈 회개, 자아의 죽음과 부활 등입니다. 우리는 이런 것 없이 승승장구하고 평탄하기를 소원합니다. 그러나 인생의 깊이와 지혜는 그냥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에 무게를 더하는 요소들에 의해 깊이 있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이 가벼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오늘날 쉽고 편한 기독교에 중독된 그리스도인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을 그저 기도를 들어주는 요정 정도로 생각합니다. 오래 떼쓰면 들어주는 분으로 착각합니다. 예수님을 천국 갈 때 필요한 가이드처럼 여깁니다. 예수님을 자신의 감정을 해소해 주는 심리 상담사나 가상의 연인처럼 대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왜 오셨고 어떻게 사셨는지, 무엇을 가르쳐 주셨는지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굳이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예수님을 내 인생의 뒷바라지를 해주는 능력 많은 노예 정도로 여깁니다. 내가 예수님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데, 예수님이 나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전부를 걸고 믿고 따라도 다함이 없는 분입니다. 그저 쉽게 먼발치에서 따라갈 분이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의 삶의 방식은 십자가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십자가의 본을 보이신 예수님은 우리도 그렇게 살라고 하십니다.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지심은 죄로 인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살리기 위함이었습니다. 별 소득이 없어 보이는 그 일에 예수님은 순종과 수고를 다 하셨습니다. 마지막엔 피 한 방울, 물 한 방울까지도 다 쏟으셨습니다. 그야말로 우리를 위한 산 제물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이 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은 산속이나 광야가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도시 한복판이었습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무게감 있는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신앙에 무게를 더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신앙이 좀 더 깊어지기를 바랍니다. 쉽고 편하게 예수님을 따르려는 대신 희생도 기꺼이 감당하기를 바랍니다. 사역은 말이 아닌 십자가로 하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애쓰면서 눈물로 무릎으로 감당하는 것이 진짜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충성하는 것이 진짜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성공적인 인생을 살려고 꿈꾸기에 믿음의 길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내 유익을 위해서가 아닌 예수님을 사랑해서 예수님을 따르고 섬기기를 바랍니다. 내 뜻, 내 생각, 내 이익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 계획,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구하는 신앙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십자가를 짐으로 신앙의 무게가 더욱 깊어지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