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대왕이 한 화가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도록 했습니다. 대왕의 얼굴을 본 화가는 아주 난처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대왕의 오른쪽 볼에 큰 칼자국의 흉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화가는 대왕을 의자에 앉게 한 후 조그마한 탁자를 앞에 놓고 편안한 자세로 오른쪽 손으로 오른쪽 턱을 고이도록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볼의 흉터가 가려졌습니다. 화가는 대왕의 초상화를 멋지게 그려서 대왕에게 주었습니다. 대왕은 화가에게 큰 상금을 내렸고 죽을 때까지 왕궁에서 그림을 그리며 살도록 했습니다. 허물을 덮어주어 모두가 행복해졌습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상대의 흠과 허물을 덮어주고 용납함에 있습니다. 물론 무조건 허물을 덮어주는 것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죄와 잘못은 밝혀서 바로잡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흠과 허물을 덮어줄 때, 우리는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요즘 세상사를 보면 누군가의 실수나 잘못에 대해 들춰내고 비난하는 것을 경쟁하는 듯 합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를 판단하고 정죄하는데 일가견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부족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셨는데, 우리는 타인의 흠과 허물에 관대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확대해서 문제를 크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바울 사도를 통해,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빌 4:5)라고 권면했습니다. 관용은 상대방의 흠이나 허물에 대해 너그러움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입니다. 관용의 사람은 자신이 소중한 것처럼 다른 사람도 소중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덮어주고 받아줄 때, 하나 됨을 이룹니다. 관용은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관용을 베풀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관용을 베풀 때, 주변에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관용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관용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이미 진노의 심판을 받았을 것입니다. 관용은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까지 품고 기도하셨습니다. 관용을 베풀 때, 우리 영이 살아납니다. 관용은 우리의 영적 상태와 관련이 있습니다. 나 자신의 상태에 따라 주변의 사람들이 좋거나 좋지 않게 보입니다. 주변 사람의 행동이 눈에 거슬리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 사람보다 내게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 사람은 언제나 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나 자신의 상태입니다. 주위 사람들의 흠과 허물이 크게 눈에 들어오면, 먼저 자신을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내 안에 성령의 은혜가 사라졌는지를 점검해 보십시오. 성령의 은혜가 메마르면 관대함이 사라지고 흠과 허물이 크게 보입니다.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주시도록 성령님의 도움을 구하기를 바랍니다.
받는 것 없이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주는 것 없이 싫은 사람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모두를 지으시고 죽기까지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에 대해 너그럽기를 바랍니다. 함께 있고 싶은 품이 넉넉한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옳긴 옳은데 함께 있기 싫은 사람이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정의로운데 같이 일하기에는 부담스러워서도 안 됩니다. 가슴이 넓고 너그러운 사람, 함께 있고 싶고,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되십시오. 가장 큰 장애물이 바로 나 자신일 수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사람에 대한 관용은 우리 삶을 풍요롭게 만듭니다. 흠과 허물 많은 우리를 받아주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관용을 베풀어 공동체를 아름답게 세우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