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건강, 돈, 시간이 있어야 잘 사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건강과 돈, 시간이 있으면 편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 가지가 꼭 잘 사는데 필요충분조건은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는 건강한 육신으로 죄를 짓고 다른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사람이 많습니다. 돈이 많은데도 불행하게 사는 사람도 많습니다. 가진 것이 많아 게으르게 살면서 허탄한 것에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반면 어떤 사람은 몸이 약한데 잘 삽니다. 돈이 없는데도 남을 도우며 삽니다. 환경이나 조건이 잘 살고 못 살고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내가 잘 살기로 결정할 때, 잘 살 수 있습니다. 성경적인 잘 사는 것은 나보다 남을 잘되게 하는 것입니다. 환경이나 조건에 굴하지 않고 그보다 더 높은 가치를 추구하며 사는 사람이 잘 사는 사람입니다.
많은 성도님들이 기독교를 오해합니다. 너무나 쉬운 기독교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그저 기도를 들어주는 요정 정도로 생각합니다. 오래 떼쓰면 들어주는 분 정도로 착각합니다. 또 천국 갈 때 필요한 가이드로 여깁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왜 오셨는지, 어떻게 사셨는지, 무엇을 가르쳐 주셨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아니 굳이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예수님을 자기 인생의 뒷바라지를 해주는 능력 좋은 하인 정도로 취급합니다. 예수님을 자신의 감정을 해소해 주는 심리 상담사나 가상의 연인처럼 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전부를 걸고 믿고 따라도 다함이 없는 분입니다. 그저 쉽게 먼발치에서 따라갈 분이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의 삶의 방식은 십자가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십자가의 본을 보이신 예수님은 우리도 그렇게 살라고 하십니다.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좇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지심은 죄로 인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살리기 위함이었습니다. 별 소득이 없어 보이는 그 일에 예수님은 순종과 수고를 다하셨습니다. 마지막엔 피 한 방울, 물 한 방울까지도 다 쏟으셨습니다. 그야말로 우리를 위한 산 제물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은 산속이나 광야가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도시 한복판이었습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답게 책임 있게 잘 사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 믿는 것,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세상의 기준과 관행을 벗어난 삶이어서 늘 힘이 듭니다. 어떻게 보면 믿는다는 것은 내 목숨을 거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기로 하는 것은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닙니다. 아니 그래서도 안 됩니다. 쉽고 편하게 예수님을 따르려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십자가를 자원해서 지는 것입니다. 고난을 감수하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애쓰면서 눈물로 무릎으로 감당하는 것이 진짜입니다.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대가를 치르십시오. 우리 주변에 우리가 감당할 문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답게 그 책임을 잘 감당합시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 때문에 이 땅에 지상 천국이 임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