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나 존중받기를 원합니다. 존중의 사전적인 의미는 ‘높이어 귀중히 여김’입니다. 존중은 존귀하고 가치 있게 여기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소중히 여겨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소중한 것, 아끼는 것은 함부로 대하지 않습니다. 무례히 행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서로 존중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보배롭고 존귀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존중받도록 태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존중은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기본 욕구입니다. 존중을 받을 때 자존감이 높아집니다. 인생의 의미와 보람, 행복을 경험합니다. 존중은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빛나고 매력 있게 만듭니다. 사람은 존중받는 쪽으로 몸과 마음이 향하게 되어있습니다. 세상을 밝고 환하게 만드는 비결은 서로 존중함에 있습니다. 가정의 달을 맞아 가족 간에 서로 존중함으로 가정에서 지상 천국을 맛보기를 소원합니다.

  존중은 좋은 인간관계를 맺는 비결입니다. 인생의 진정한 행복은 관계가 원만함에 있습니다. 심리학자 아들러는 “인생의 모든 문제는 관계의 문제다.”라고 말했습니다. 인생의 행복과 불행은 관계에서 결정됩니다. 소유보다 관계가 좋을 때, 행복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관계를 잘 맺는 법을 지속해서 배워야 합니다. 대부분의 관계 문제는 서로를 존중하지 않음에 있습니다. 우리는 낯설었을 때는 어렵게 대하다가 익숙해지면 함부로 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관계가 깨지고 불행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이일수록, 가까운 관계일수록 더욱 예의를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부부, 가족, 동료, 친구 관계에서 존중은 필수입니다. 존중은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핵심 요소입니다. 서로를‘윈윈(win-win)’하게 만드는 비결은 존중에 있습니다. 

  존중은 농작의 법칙과 같습니다. 존중을 심으면 존중을 받게 됩니다. 다른 사람을 경멸하면 멸시를 받게 됩니다. 존중의 원리는 예수님의 황금률 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 7:12)라고 하셨습니다. 존중히 여김을 받고 싶다면 먼저 남을 존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삼상 2:30)라고 하셨습니다. 존중의 반대는 경멸입니다. 경멸은 “업신여기다, 천하게 취급하다, 무가치하게 여기다”라는 뜻입니다. 존중은 존중을 낳고 경멸은 경멸을 낳습니다. 존중은 거름 같아서 적당히 사용하면 공동체라는 대지를 비옥하게 만듭니다. 꽃을 활짝 피우고 열매를 맺는 비결은 존중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을 존중하셨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존경받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제가 저 자신을 볼 때, 존경받을 만한 점이 딱히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목회자로 살고 있지만 존경받을 만한 점은 그리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존경받고 싶다는 생각을 일찍 내려놓았습니다. 그러나 존중은 받고 싶습니다. 존중을 받으면 삶의 의미를 느끼기 때문입니다. 저의 존재 가치와 목회자로서의 보람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존중을 받으면 기분이 좋고 살맛이 납니다. 온종일 행복합니다. 존중이 존중을 낳습니다. 서로 존중함으로 살맛 나는 공동체, 행복한 공동체를 이루어 가기를 바랍니다. 존중을 통해 우리 공동체가 살아나고 활력이 넘치는 천국 공동체가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