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한 주간은 사순절의 마지막 주간이며 고난 주간입니다. 고난 주간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깊이 묵상하는 주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십자가형은 로마 제국 당시 죄인을 가장 고통스럽고 수치스럽게 만드는 형벌이었습니다. 투석형, 화형, 맹수형의 사형 방법도 고통스러웠지만, 십자가형이 가장 죄인을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빨리 죽지 않고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기 때문입니다. 피가 몸에서 서서히 빠지고, 호흡이 점점 힘들어지며, 오랫동안 십자가에 매달려 있다가 결국 심장 마비나 질식, 쇼크로 숨지게 됩니다. 무엇보다 십자가에 처형되는 죄수는 벌거벗은 상태였습니다.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는 네거리나 언덕 위의 십자가에 매달린 죄수는 극도의 수치심을 느꼈습니다. 십자가는 모두가 꺼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십자가에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유대 사회에서 가장 일반적인 사형 제도는 죄인을 돌로 쳐서 죽이는 투석형이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한 자, 우상 숭배자, 간음한 자를 돌로 쳐 죽이라고 했습니다. 심지어 안식일 규례를 어겼다고 돌에 맞아 죽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신약에서는 간음하다 잡혀 온 여인에 대해 투석형이 언급되었습니다. 유대 사회에서 십자가형을 사형 제도로 사용한 경우는 없습니다. 다만 죽여서 나무에 매단 경우는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투석형이 아닌 십자가형을 받으셨습니다. 아마도 예수님 당시 로마 당국이 유대인들의 사형 집행을 금지한 것 때문으로 여겨집니다. 예수님은 로마법에 의해 십자가형을 언도 받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럼으로써 유대 율법이 말하는 나무에 달린 자는 저주를 받은 자가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을 믿는 자들의 저주를 대신 담당하시고, 유대의 율법을 성취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형은 실상은 영원 전부터 하나님이 계획하신 방법이었습니다. 십자가 이외에 인류를 구원할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만약 다른 방법이 있었다면 하나님은 그 방법을 선택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희생시킬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 계획대로 예수님은 우리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이 짊어지신 우리의 죄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아야 할 만큼 크고 심각한 것이었습니다. 그 엄청난 죗값을 예수님이 온 몸으로 다 갚아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려 있게 한 것은 쇠못이 아닌 우리를 향한 사랑이었습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희생의 증표이며 결정체입니다.

 

  십자가는 기독교의 중심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십자가 없는 기독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임당하시고 다시 사신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며 진수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후, 십자가가 기독교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모두가 꺼리던 가장 흉악한 사형 도구인 십자가가 우리의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십자가가 흉물이 아닌 사랑과 흠모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며 우리도 예수님처럼 각자의 십자가를 집시다.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인 십자가가 장식품이나 상징물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고난 주간에 각자의 자리에서 십자가를 지므로 승리하는 삶을 살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