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병원에 입원해 있거나 거동이 불편해서 교회에 오시지 못하는 성도님들이 많습니다. 또 주일에 아주 힘들게 교회에 오시는 성도님들도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 성도님 한 분이 힘들게 교회에 오셨습니다. 성도님은 부흥회에 다 참석하려고 결심하셨지만, 건강이 허락하지 않아 2부 예배만 드리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결심이 변심이 되었다며 너무 아쉬워하셨습니다. 이야기를 듣는데 마음이 아팠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님의 건강을 회복시켜 주실 것을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고난이 찾아옵니다. 고난 없는 인생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산다는 것은 고난을 감내하는 것입니다. 고난은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 모두에게 동일하게 찾아옵니다. 예수를 잘 믿는다고 고난이 면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고난이 누구에게나 필연적이라면, 고난에 대한 바른 시각을 갖는 것이 인생 승리의 비결입니다.
우리는 고난이 찾아오면 일단 고난을 피하려 합니다. 기도할 때도 고난을 없애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 가운데 하나님의 주권적 간섭과 섭리를 벗어나서 찾아오는 고난은 없습니다. 고난은 목적이 있고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어지는 고난은 예외 없이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의 방편입니다. 그것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찾아올 때, 고난을 피하려고 애쓰는 대신 고난을 끌어안고 함께 사는 법을 배우시기를 바랍니다. 고난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과정이 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고난을 통해 예수님 닮은 인격으로 변화되어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할 때, 더욱 아름답게 쓰임 받기를 바랍니다. 인생의 고난이 신앙적으로 유익이 되고 성장과 성숙의 재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시편 기자는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주는 선하사 선을 행하시오니 주의 율례들로 나를 가르치소서”(시편 119:67-68)라고 고백했습니다. 고난이 하나님의 선하심이 나타난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선하셔서 자신에게 선한 것만을 행하신다고 고백합니다. 또 고난 당하기 전에는 그릇 행하였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다고 고백합니다. 고난을 통해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사는 것인지를 배운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 없는 삶이 축복이며 믿음이 좋은 결과라고 믿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시편 기자의 고백은 이해하기 어려운 신앙의 신비입니다.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아무리 없애 달라고 해도 없어지지 않는 고난은 포기하고 체념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고난을 떠안고 그 고난의 의미를 고민하고 씨름하고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라는 메시지입니다.
좋은 뱃사공은 바람이 세게 불면 바람을 이용해서 배를 더 빨리 몰고 갑니다. 고난을 하나님 앞으로 더 가까이 나가는 도구로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정신의학자인 폴 투르니에는 “고난이 크면 클수록 그 고난이 만들어내는 창조적 에너지는 더 크다.”라고 말했습니다. 고난은 파괴적이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창조적인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어차피 감당해야 할 고난이라면, 그 고난 속에서 창조적인 에너지를 뽑아내십시오. 그 에너지를 성장과 성숙을 위한 재료로 삼으십시오. 하나님은 고난의 때에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능력으로 고난을 넉넉히 감당하고 승리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