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행코팍 지역을 걷습니다. 걸어야 할 목표지점에 도달하기 위해서 비교적 상당히 빨리 걷습니다. 또 설교를 듣거나, 성경 말씀을 들으며 걷습니다. 그래서 주변의 꽃이나 나무, 풍경에 거의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저 만나는 사람들에게 손 인사를 할 정도입니다. 최근에 슬로우 영성이라는 책을 읽고 조금 천천히 걷기로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속도를 조금 늦추었을 뿐인데 주변의 꽃, , 나무 등이 반겨줍니다. 천천히 걸을 때 보이지 않았던 꽃의 화려함, 풀의 산들거림, 나무의 푸르름 등이 눈에 들어옵니다. ‘슬로우 영성의 저자인 존 마크 코머는 바쁨과 사랑은 양립할 수 없다. 아버지, 남편, 목사, 나아가서 인간으로서 내 인생의 최악의 순간들은 하나같이 바쁜 순간들이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바쁘고 빠른 것보다 느리게 사는 것의 귀중함을 절실히 깨닫습니다.

 

  우리는 속도가 중요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속도의 중요성을 알지만, 또한 느리게 사는 것도 즐겨야 합니다. 느림은 게으름이 아닙니다. 느림은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풍성함입니다. 우리에게 위험한 것은 분주함입니다. 우리의 큰 유혹은 사람들에게 바쁘게 보이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바쁜 사람이 잘사는 것처럼 보이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바쁜 척을 합니다. 빠르고 분주하게 행동합니다. 물론 하루하루 바쁘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쁘게 이룬 성취는 충분히 숙성되지 않아 위험합니다. 달라스 윌라드는 삶에서 바쁨을 가차 없이 제거해야 한다. 바쁨은 우리 시대에 영적 삶을 방해하는 큰 적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칼 융은 바쁨은 악마의 것이 아니라 악마 자체다.”라고 말했습니다.

 

  존 오트버그는 바쁨은 단순히 헝클어진 스케쥴이 아니라 헝클어진 마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속도를 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속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방향이요 깊이이기 때문입니다. 속도가 아무리 빨라도 방향이 옳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또 깊이가 없는 것은 그저 피상적인 것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깊이 있는 친밀함을 원하십니다. 무엇보다 느린 삶을 살아야 할 이유는 하나님과의 동행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서둘러서는 안 됩니다. 월터 애덤스는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은 서두르지 않고 느린 속도로 걷는 것이다. 바쁨은 곧 기도의 죽음이며, 우리의 일을 저해하고 망칠 뿐이다. 절대 우리의 일을 진척시키지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으면서 사람들을 인도할 수 없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인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느린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 하심을 분별하기 위함입니다. 분주하다는 것은 성령보다 앞서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보다 앞서고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실천하는 것보다 앞서고 있다는 것입니다. 분주하면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분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때를 분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잘 분별하기 위해서는 서둘러서는 안 됩니다. 메모리얼 데이 연휴입니다. 바쁘게 걸었던 걸음걸이를 조금만 늦추면 좋겠습니다. 하루라도 느리게 걸으면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시기를 바랍니다. 연휴 기간 동안 우리의 몸도, 마음도 쉼과 안식을 누리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