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내지선교회 설립자인 허드슨 테일러가 중국에서 선교할 때 누군가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언제부터 그리스도인으로서 빛을 발하며 살 수 있습니까? 언제부터 제대로 사역을 할 수 있습니까?” 이 질문에 허드슨 테일러는 촛불은 언제부터 빛을 비춥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 촛불은 켜지는 순간 빛을 비춥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섬김을 바로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섬김의 자리에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 예수님을 따르려면 섬김의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섬김의 자리에서 섬김을 실천할 때, 우리는 더욱 예수님을 닮아가게 됩니다. 섬기는 곳에는 경쟁자들이 없습니다. 그러나 드러내고 나타내는 곳에는 경쟁이 치열합니다. 예수님은 경쟁자가 없는 섬기는 곳에 외롭게 계십니다.

 

  예수님은 섬기는 자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10:45)고 하셨습니다. 말씀대로 예수님은 자신의 목숨을 우리를 위한 대속물로 내어 주셨습니다. 섬김의 본을 친히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리다툼을 하는 것을 보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라”(20:26)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섬김은 단순한 미덕의 권고 차원이 아닙니다. 예수님 안에서 세상 질서가 바뀌었음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높은 자가 낮은 자 위에 군림합니다. 낮은 자가 높은 자를 섬깁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세상과 다른 질서로 살아갑니다. 하나님 나라는 약한 자가 섬김을 받습니다. 교회는 이 원리를 온몸에 새기고 실천하는 공동체입니다.

 

  섬김은 종이 주인을 섬기듯 상대방을 존중하고 겸손히 봉사하는 것입니다. 섬김은 약한 자가 어쩔 수 없이 택하는 미덕이 아닙니다. 강한 자만이 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분명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만이 섬길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자 캘빈은 왕이라도 섬김이 없이는 의롭게 다스릴 수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왕이나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백성을 섬기겠다는 마음이 없이는 존경받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아프리카의 성자 알버트 슈바이처는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 행복해질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행복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밖에 모르고 남에게 관심도 없는 사람은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수고스러워도 남을 위해 섬기고 헌신하는 사람이 진정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섬김은 예수님의 정신입니다. 섬김의 기회에 예민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성도가 크든 작든 한 가지씩 섬김에 참여하시길 권면합니다. 섬김을 실천할 때, 손님이 아닌 가족이 됩니다. 무엇 보다 섬김은 우리를 성장하게 합니다. 설교를 듣거나 성경 공부를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실천할 때, 말씀이 사실임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은 부쩍 자라게 됩니다. 교회 안에 생명이 흐르고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려면 서로를 위한 섬김을 실천해야 합니다. 섬김은 그 자체로 복입니다. 섬김을 받는 사람도 복이지만, 섬기는 사람이 더 큰 복을 받습니다. 교회가 정상화되면서 곳곳에 일꾼들이 필요합니다. 특히 교육부, 주차장, 차량 픽업, 헌금 계수, 식당 등에 섬김을 실천할 일꾼들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있으신 섬김의 자리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