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예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임당하시고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며 진수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후, 십자가가 기독교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모두가 피하던 가장 흉악한 사형 도구인 십자가가 성도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집집마다 십자가를 그려 놓았습니다. 십자가를 멋지게 만들어 잘 보이는 곳에 걸어 놓았습니다. 멀리서도 보일 수 있도록 가장 높은 곳, 교회 첨탑에 십자가가 세워졌습니다. 십자가는 더 이상 거추장스러운 흉물이 아닌 흠모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십자가에는 눈물, 고난, 자기 포기 등의 뜻이 새겨져 있습니다. 십자가는 죽음이며 예수님과 함께하는 영광입니다. 마침내 생명, 영생에 이르는 복이 십자가입니다.

 

  유대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처형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을 욕되게 해서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죽은 사람으로 만들려 했습니다. 모세의 법에 따르면, 나무에 달려 처형된 자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21:23)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뜻대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처참히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영원 전부터 하나님이 계획하신 방법이었습니다. 십자가 이외에 인류를 구원할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만약 다른 방법이 있었다면 하나님은 그 방법을 사용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희생시킬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 계획에 따라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저주를 받아 죽으셨습니다.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인생은 사십부터가 아니다. 이십부터도 육십부터도 아니다. 인생은 십자가로부터다."라고 말했습니다. 십자가 사랑을 깨닫는 순간 우리 인생은 새롭게 시작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볼 때마다 감격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과 저주를 예수님이 대신 담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극심한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부재 상태를 경험하는 영적인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무엇이 예수님으로 하여금 그 고통을 감당하게 하셨을까요? 우리를 향한 크신 사랑 때문입니다. 그 사랑이 온몸으로 고통을 감내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려 있게 한 것은 쇠못이 아닌 그분의 사랑이었습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증표이며 결정체입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것이 우리 마음을 결정합니다. 세상 것을 바라보고 세상 것에 소망을 둔다면 세상을 닮아갑니다. 십자가를 주목하고 바라본다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해 자신의 사랑을 보여주신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아는 것만큼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아는 것만큼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인생의 날수가 더할수록, 피 묻은 십자가의 은혜에 감격하는 사람이 되기 바랍니다. 바울 사도는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6:14)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인 예수 십자가를 자랑합시다.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며 날마다 예수 십자가를 전합시다. 십자가가 장식품이 아닌 우리의 신앙 고백이요 자랑거리가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