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한 인간관계 훈련 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강사가 강단에 서자마자 질문 하나를 던졌습니다. '오늘이 여러분의 생애 마지막 날이라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장내가 갑자기 조용해졌습니다. 잠시 후, 사람들이 차례로 돌아가면서 대답을 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대답은 비슷했습니다. '더 많이 사랑하고, 다 용서하고 떠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강사가 이야기 했습니다. '그런데 왜 꼭 마지막 날에 그래야 합니까?' 갑자기 한 대 얻어맞는 기분이었습니다. 이 중요한 일을 왜 꼭 마지막 날까지 기다렸다가 하는 것일까? 좀 더 일찍 할 수는 없을까? 저 자신에게도 질문해 보았습니다. 마지막까지 뒤로 미루는 것은 희생하기 싫어서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장 손해 볼 것 같기에 사랑하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희생하지 않으면 유익이 없습니다. 희생해야 인간관계도 회복되고 유익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의 희생이 많이 생각나는 사순절입니다. 예수님은 기독교를 창시하러 이 세상에 오시지 않았습니다. 우리 대신 십자가를 지고 희생하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을 마다하지 않고 희생하신 결과로 우리가 구원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의 희생의 징표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희생하지 않으셨다면, 십자가는 사형을 위한 형틀에 불과 합니다. 그저 우리의 몸에 달고 다니는 장식이나 건물 위에 매달려 있는 사인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희생하심으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 희생이 기독교를 잉태하게 만든 힘이었습니다. 교회가 서 있게 하는 능력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희생은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의 증명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그냥 되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일은 희생을 요구합니다. 먼저 희생을 치르든지 나중에 희생을 치르든지 순서가 다를 뿐입니다. 희생 없이 얻은 것은 후일 더 큰 희생을 치르게 됩니다. 먹고 싶은 대로 먹고, 놀고 싶은 대로 놀고, 가고 싶은 대로 가고,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는 것은 자유롭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망하는 지름길입니다. 자유의 본질은 욕망을 마음껏 채우는 것이 아닙니다. 욕망이 요구하는 것을 절제하는 데 있습니다. 내 자신을 쳐서 희생시킴에 있습니다. 희생은 자신을 먼저 생각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나보다 더 잘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배려하고 끝까지 참아냅니다. 사랑은 희생입니다. 우리의 사랑에는 희생이 따라야 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내가 손해보고 희생하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희생은 잃는 것이 아닌 더 풍성히 얻는 비결입니다. 한 알의 밀알이 떨어져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나 말만 많고 희생이 없다면 열매도 없습니다. 먼저 희생할 준비를 하십시오. 기꺼이 희생을 치를 각오를 하십시오. 예수 믿는 우리의 존재 이유는 희생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희생으로 우리에 대한 사랑을 증거 해 주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희생으로 나타내야 합니다. 행복한 가정에는 희생이 있습니다. 행복한 교회에도 누군가의 희생이 있습니다. 오늘 희생한다고 손해 보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위해 희생한 사람은 더 많은 주님의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그 사랑에 감격하여 더 많이 수고하게 됩니다. 사순절을 보내면서 우리 안에 희생의 열망이 차고 넘치기를 축복합니다